도시와 집무실, 그리고 ‘르 코르뷔지에’

원문 – 2021.02.03 @인스타그램

9개월 전 ‘로켓펀치를 기반으로, 사람들이 중심업무지구로 출퇴근하지 않고 일하는 시대를 위한 업무 공간을 만들기 위해 회사를 합치자’는 저에게 김성민(@kolbe_kim), 정형석(@hauschung)두 사람이 물었습니다. 사무공간만 생각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결국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요.

제가 답했습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업무지구와 주거지구가 구분된 도시의 형태는, 산업혁명 이후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가 만들었다. 나는 사람들이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일하는 것이 보편화될 디지털 혁명 이후 시대의 도시 구조를 만들고 싶다. 그러면 우리 사회가 가진 양극화 같은 어려운 문제도 자연스레 해결될 것이다”라고요.

9개월이 흘러 고도화된 집무실의 공간 설계에는 ‘르 코르뷔지에’의 모듈러 개념이 적용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인터넷 덕에 세상 어디서나 일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는데, 업무 공간이라고 한 자리에서만 앉아 일할 이유가 어디 있나요? 우리가 가진 업무 장비는 노트북이나 태블릿처럼 한 손에 들고 움직일 수 있는 기기가 되었는데 말입니다.

집무실에서 일하는 사람은 집중된 공간에서 일하다가, 잠깐 허리를 펴고 스탠딩 테이블로 옮겨서 일했다가, 또 소파에 늘어져서 쉴 수도 있습니다. 집무실의 단순한 회원 시스템은 놀라운 가격에 이 다이나믹이 높은 공간을 내 거실처럼 사용할 수 있게 만듭니다.

로켓펀치와 결합한 집무실은, 거시적 공간 관점에서는 중심업무지구로 이동하지 않고서도 일할 수 있는 자유를, 미시적 공간 관점에서는 앉고, 서고, 기대는 등, 일하는 자세의 자유를 인류에게 선사할 것입니다.

머릿속에만 있던 미래의 업무 공간을 제가 상상하던 것 이상으로 만들어 준 김성민, 정형석 두 사람에게 새삼스러운 감사를 표합니다.

그리고 ‘르 코르뷔지에’라는 선각자에 대해서 가르쳐주신 김개천 교수님께도 감사를 표합니다.

건명원 서울대학교 미술관 특강 – 미술과 건축 그리고 소프트웨어

[2016.04.16 (토) 10:00 – 13:00] 서울대학교 미술관 관장 김성희 교수님께서 특별히 건명원 사람들을 초청하셔서 진행된 수업으로, 동서양 미술에 대한 통찰과 함께 렘 쿨하스가 설계한 서울대학교 미술관 MoA 건물에 대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특별히 강의 말미에는, 곧 건명원에서 강의하실 김개천 교수님께서 렘 쿨하스의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본문에 삽입된 이미지들은 클릭하면 고해상도 원본을 볼 수 있습니다)


1. 동양 미술, 서양 미술에서의 공간과 자연
  • 서양 미술에서 빈 공간은 그려지지 않은 것 (Nothingness), 동양 미술에서 빈 공간은 빈 것으로 그려진 것 (Emptiness). 우리나라가 근대화를 서구 문물을 통해 이루면서, 채워지지 않은 공간은 그려지지 않은 것으로 배웠는데, 이는 너무 좁은 시각.
  • 서양 미술에서는 사람이 자연과 분리되어 자연을 관찰하는 입장이지만, 동양 미술에서 사람은 그 자연 속으로 들어감. ‘Villa of Livia’ 벽화에는 울타리가 있지만, 최백의 ‘쌍희도’에는 울타리도 없고, 감상자가 그 상황 한 가운데에 놓인 느낌을 받을 수 있음.

Villa of Livia
Villa of Livia

//embedr.flickr.com/assets/client-code.js

//embedr.flickr.com/assets/client-code.js

최백 - 쌍희도
최백 – 쌍희도

  • 동양 산수화를 감상하는 법도 이와 같음. 전체를 볼 수도 있지만, 내가 그 풍경으로 들어섰다고 생각하고 산과 계곡, 길을 따라가면서 감상할 것. 길을 따라 가다보면 절벽도 만나고, 냇물도 만나고, 숲도 만나고 사람도 만나게 될 것.

하규 - 계산청원도(溪山清遠圖)
하규 – 계산청원도(溪山清遠圖)

//embedr.flickr.com/assets/client-code.js

곽희 - 조춘도
곽희 – 조춘도

 

2. 미술을 대하는 관점의 변화
  • 과거에는 실제처럼 똑같이 그리고 만드는 것이 중시되었기에, 미술가에게 요구되는 것은 ‘모사할 수 있는 능력’이 되었음. 세계대전 후 르네 마그리뜨, 마르셀 뒤샹을 거치면서 예술은 ‘모사’에서 ‘창조’로의 변화했고, 이제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세상이 되었음.

르네 마그리뜨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르네 마그리뜨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마르셀 뒤샹 - 샘
마르셀 뒤샹 – 샘

  • ‘예술가는 더 이상 ‘재현’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제시하고 발언하는 사람’이 되었고, 논란이 되기도 하는 현대 미술 작품들이 다수 등장

Joseph Beuys
Joseph Beuys

  • 1차 세계대전에서 구출 될 때, 지역 원주민들에게 지방과 펠트 천으로 치료 받은 Joseph Beuys 는 자신의 작품에서 작품 활동에서 지방(왁스)과 펠트를 사용

Damien Hirst – 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 (살아있는 사람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

Damien Hirst - For the Love of God (신의 사랑을 위하여)
Damien Hirst – For the Love of God (신의 사랑을 위하여)

트레이시 에민 - 나와 함께 잤던 사람들
트레이시 에민 – 나와 함께 잤던 사람들

  • Young British Artists (yBa)의 작품들 : 포름알데히드 용액 속에 담겨진 진짜 동물의 사체, 다이아몬드로 캐스팅 된 두개골, 본인과 함께 잤던 ‘부모님, 남자친구, 낙태했던 아이’의 실제 이름을 적어둔 텐트

 

3. MoA와 건축가 ‘렘 쿨하스’
  • MoA는 지하부터 최상단까지가 뚫린 ‘상자’ 같은 구조. 교회 말고는 이런 구조가 거의 없음. 바닥과 천장의 기온차도 존재하고, 가끔은 ‘상자’가 울림통 같은 역할을 해서 사실 미술품을 관리하기 편한 구조는 아님.
  • 개성 있는 공간이라 작품 전시 구성이 어렵지만 다시 말하면 평범하지 않은 작품만 어울리는 공간.

SNU - MoA
SNU – MoA

  • 램 쿨하스는 이처럼 항상 실험적인 건축을 진행. 설계한 건축 중 20% 정도만 실제 건축으로 이어짐.
  • 우리가 건축을 볼 때 ‘어떤 양식이다’, ‘어떤 의미가 있다’는 것에 너무 집착을 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 인간이 예술로 아무리 우주를 표현하려고 해도 결국 우주를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 형식과 양식을 찾으려고, 끼워 맞추려고 하지 말 것.
  • 층의 구분도 없고, 수직적 구분도 없으며, 지하에서 최상층으로 바로 갈 수도 있는 MoA는 ‘무형의 건축’으로 ‘분열 속에 있기를 바라는 조직적 구성.

생각 : 미술과 건축 그리고 소프트웨어

비어있는 공간과 그 공간에 존재하는 사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 시간이었다. 동양화에서 빈 공간이 가지는 의미와 그 공간을 대하는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를, 공간이 특별한 건축물 MoA에서 듣게 된 것은 정말 큰 행운이다.

소프뱅크벤처스 코리아의 사무실의 정문을 열고 들어가면, 텅 빈 공간이 나오고 멀찍이 벽 쪽에 백자 항아리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몇 년 전 처음 그 모습을 보고 참 신기한 구성이다 싶어 한참 보고 있었더니, 날 초대하셨던 분께서 설명을 해주셨다.

‘비즈니스는 이렇게 비어있고, 단순해야 한다. 여기 오는 사람들에게 그걸 알려주고 싶었다.’

#공간

A photo posted by ingray (@ingray) on

//platform.instagram.com/en_US/embeds.js

이번 특강을 들으면서 이 대화가 떠올랐고, 미술도, 건축도, 비즈니스도 ‘비어있음’으로 더 높은 완성도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건축과 소프트웨어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할 수 있다. 김개천 교수님께서 ‘건축 후 발생하는 사소한 문제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세상에 문제가 없는 건축은 없다’라는 이야기를 하셨는데, 이는 ‘린스타트업, 애자일 개발 프로세스’의 생각과 일맥상통한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인간이 아무리 완벽한 창조물 – 그것이 건축이건, 소프트웨어건 – 을 만들고 싶어 해도,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불가능을 인정하고 지금 내가, 그리고 우리가 만들 수 있는 최선의 것을 만드는데 집중하는 것이 진정 옳은 접근 방법이 아닐까? 건축이나 소프트웨어나 사람들이 사용하는 그 순간이 진짜 완성의 시간이자 동시에 새로운 창조가 시작되어야 하는 순간이니까.

지금 우리 팀은 사무실이 없는 100% 원격 근무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에 맞는 업무 시스템이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의 결론인데, 이에 대해서는 곧 더 자세히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 같다.) 회사 조직이 커지면, 목적에 따라 오프라인 공간이 필요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 공간은 오늘 느낀 ‘비움’의 철학을 충실히 반영한 공간으로 만들어야겠다.

렘 쿨하스는 속박으로부터의 자유, 구조로부터의 자유, 정형화된 모델로부터의 자유, 이데올로기로부터의 자유, 질서로부터의 자유, 프로그램으로부터의 자유, 계통이나 계보로부터의 자유를 주장합니다. 이러한 생각을 지니고 있기에 그의 작품은 어느 한 가지 방향으로만 치닫지 않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점잖은 건축으로, 때로는 종난해한 건축으로 표현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 More Is More : OMA/REM KOOLHASS 이론과 건축


+ 건명원 서울대 미술관 특강 스케치

#건명원 무리(?)들//embedr.flickr.com/assets/client-code.jsPhoto//embedr.flickr.com/assets/client-code.js

Photo//embedr.flickr.com/assets/client-code.jsPhoto//embedr.flickr.com/assets/client-code.js

Photo//embedr.flickr.com/assets/client-code.jsPhoto//embedr.flickr.com/assets/client-code.js

Photo//embedr.flickr.com/assets/client-code.js#건명원 미술관 특강//embedr.flickr.com/assets/client-code.js

#건명원 #미술//embedr.flickr.com/assets/client-code.js#건명원 #미술//embedr.flickr.com/assets/client-code.js

#건명원 김개천 교수님. 본인 전문 분야에 대한 카리스마가 흘러넘치신다.//embedr.flickr.com/assets/client-code.js3? #건명원//embedr.flickr.com/assets/client-code.j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