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땅’ 되지 않기

월요일 퇴근 길에 ‘난 알아요’ 듣다가 떠오른 생각 정리.

– 서태지와 아이들이 1992년에 데뷔했으니까 무려 20년 전 곡이다. 데뷔 무대 사회를 보신 분이 임백천 선생님이고, ‘트리오’ 같은 지금으로선 꽤 생소한 단어들이 들린다.

– 1992년을 기준으로 20년 전을 계산하면 1972년이고, 이때는 한참 나훈아와 남진 선생님의 팬덤(!)이 폭발하던 시기로 검색해보니 ‘머나먼 고향(나훈아)’, ‘님과 함께(남진)’가 이 해에 출시된 곡이다.

– 즉,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중고등학생들은, ‘난 알아요’를 들으며 추억에 잠길 수 있는 나에게서, 내가 두 노가수의 노래를 들으며 추억에 잠기는 분들께 느끼는 거리감만큼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속칭 ‘노땅’ 혹은 ‘꼰대’로 충분히 불리 울 수 있는 세대가 된 것이다.
– 컴퓨터와 인터넷이 더 이상 중고등학생과 대학생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은 명확하지만, 우리와는 다른 패러다임 – 예를 들면 정보의 공개에 대한 거부감이 덜한 – 으로 더 많이 연결된 세상을 살아갈 미래의 어린 세대들과 어쩔 수 없는 거리가 생기는 것은, 파괴적인 서비스로 승부해야 하는 스타트업 업계 기획자의 한 사람으로서 두려운 것이 사실이다.
– 최근에 정독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 (부제: 프로젝트 군상의 86가지 행동 패턴)’이라는 책에서 ‘영계와 노땅’에 대한 비유가 나온다. 조직에 ‘영계’만 있어도 문제가 되지만 ‘노땅’이 많은 조직은 확실히 에너지가 떨어진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그 해법으로 방과 후 고등학생을 아르바이트로 고용하라고 조언한다. 물론 절반은 농담이겠지만.
– 한참 회사 방향에 대한 고민이 많던 2011년 말부터 2012년 초까지, ‘우리가 컴퓨터를 처음 접했던 시절 (286 컴퓨터)에 비하면,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편한 세상이고, 그런 상대적인 편안함에 길들여진 우리는 그다지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니까, 새로운 아이디어 도출에도 어려움을 겪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 확실히 20대 중반 이후의 나는, ‘이 정도면 만족스럽다!’ 싶은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를 한번 접하고 나면, 그 분야에 대한 새로운 것들을 잘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취향이 점점 보수적으로 바뀐 것 같다. 역설적이게도, 나에게는 보수적인 것이 위험한 것인데 말이다.
회사에 ‘변화의 문화’를 심고자, 작년 말부터 계획한 것이 있었는데 절반의 자금적인 이유, 절반은 다른 게 더 급하다는 핑계로 오늘까지 미루고 있었다. ‘노땅’이 되지 않기 위해 고등학생이라도 고용해보라는 위 책의 조언처럼 이번 주에는 꼭 실행해야 겠다. 🙂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 괴테 <파우스트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