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글은 제가 지난 11월 당근마켓 김재현 대표님과의 만남에서 들은 조언을 갈무리한 것입니다. 제가 배운 것이 너무 많아 주변 창업자분께 이야기 드렸더니, 다들 전체 내용을 공유 받고 싶다고 하셔서, 김재현 대표님의 허락을 받고 공유합니다. 소중한 시간을 내어주시고, 후배 창업가들을 위해 흔쾌히 공유를 허락해주신 김재현 대표님께 이 글을 빌어 다시 한번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아울러 제 기억에 의존해 정리한 내용이라 김재현 대표님께서 의도하셨던 것과는 다소 다른 부분이 있을 수도 있는 점 미리 알려드립니다.
만남의 배경
로켓펀치의 실행 속도를 높이라는 조언을 계속 해주시고 계신 로켓펀치의 첫번째 투자자 이기하 대표님께서 자신이 지금까지 만나본 천개가 넘는 회사 중 가장 실행 속도가 빠른 회사라고 하시며, 만남을 주선
대화 정리
- 조민희 (이하 조): 저희 팀의 상황을 먼저 말씀드리는게 좋겠다. 이기하 대표님은 저희가 굉장히 좋은 사업 아이템을 잡았다고 생각하시고, 그래서 두번의 구주 매각 기회가 있었음에도 팔지 않으셨다. 그런데 실행 속도가 느리니 속도가 가장 빠른 회사인 당근마켓을 만나보라고 하셨다. 바쁘실 텐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하다. 저희 내부적으로 가장 큰 문제는 제품이 너무 복잡해진 것이다. 개발팀 다 열심히 하는데 제품이 너무 커져서 빨리 만들고 싶어도 빨리 안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래서 최근에 기능 몇개를 날리는 결정도 했다.
- 김재현 (이하 김): 그런가? 제품을 단순하게 유지하는 거 참 중요하다.
- 조: 당근마켓은 제품을 단순하게 잘 유지하는 것 같다. ‘지역 기반 거래 플랫폼’으로. 어떻게 그렇게 단순하게 유지할 수 있는가?
- 김: 일단 공동 창업자 중 한 명이 제품 기능을 넓히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대부분의 기능 확장에 대해서 보수적으로 검토한다. 기획자에게 기능 추가하는 것 해보라고 하면 누구나 다 한다. 기능을 단순하고 쉽게 유지하는 것이 어려운 거다. 이런 생각을 모든 팀원들에게 공유하기 위해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항상 입사 교육을 한다. 팀 내 리더 포지션 3~4명이 1~2시간씩만 교육해도 그 사람은 10시간 정도의 교육을 듣는 거다. 나는 ‘우리는 플랫폼을 만들고 있어요’라는 이야기를 한다. 나는 ‘중고거래’가 아니라 ‘로컬 기반 거래 플랫폼’을 만든다고 처음부터 생각했고, 이것을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특히 우리는 초창기부터 모바일에만 집중했다.
- 조: 그럼 웹은 안 만드는 것인가? 링크 공유를 했을 때 뜨는 페이지 같은 것도?
- 김: ‘물품 상세 페이지’만 웹으로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그 페이지는 결국 앱 다운로드 받게 하려는 미끼다. 사람들이 앱을 점점 더 많이 쓰고, 웹을 점점 더 적게 쓰는데 굳이 줄어드는 플랫폼에 에너지를 쏟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 조: 특히 위치 기반 서비스니까 더 그랬겠다.
- 김: 그렇다. 로켓펀치는 앱 안 만드시나?
- 조: 이제 만들고 있다. 2016~2017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아직 채용 중심으로 서비스를 쓰고 있었고, 앱을 내기에는 준비가 안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작년부터 프로필 페이지 조회수가 3배 이상 뛰는 등 비즈니스 프로필 서비스로 자리를 잡은 것 같고 앱을 출시할 준비를 하고 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웹이 너무 방대해졌고, 웹에서 꼭 필요한 기능만 앱으로 옮겨오려고 한다.
- 김: 그런가? 우리는 앱을 만들 때 처음부터 ‘체류 시간’을 중요하게 보았다. 습관처럼 켜는 앱이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거래할 물건이 없어도 올라온 물건들을 보는 재미가 있도록 상품 피드를 구성했다. 다들 생각하기에 개인화가 안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상품 피드 개인화 되어 있다. 5개 중에 1개를 개인화 알고리즘으로 노출한다. 초창기부터 그렇게 만들었고, 알고리즘은 계속 개선하는 중이다.
- 조: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만들었으니 ‘체류 시간이 1등인 이커머스 앱’이 되었나 보다. (참고자료 : 이커머스 방문자 1위 앱은 ‘쿠팡’…체류시간은 ‘당근마켓’ – 한국경제, 2019.01.18)
- 김: 그럴 것이다. 로켓펀치에도 피드가 생겼던데… 우리랑 비슷한 목적일 거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없앤 기능은 무엇인가?
- 조: 비즈니스 맵, 투자 기능 등이다. 전체 트래픽의 1%도 되지 않았다. 그걸 만들려고 수개월을 쏟았는데, 결국 내가 제품 로드맵을 잘못 그린 것이다.
- 김: 그럴 것 같다. 나도 그런 기능 있는지 몰랐다.
- 조: 당근마켓에서 데이터를 굉장히 잘 다룬다는 이야기를 당근마켓에 투자하신 캡스톤 파트너스에게 들었다.
- 김: 그런가? (당근마켓의 관리자 페이지 겸 대시보드를 보여주며) 초창기부터 ‘지역 기반 거래’를 잘 만들기 위한 관리자 페이지를 만드는데 집중했다. 기능이 먼저 출시되고 나중에 관리자 페이지 기능을 추가한 적은 없다. 항상 기능과 함께 관리자 페이지와 통계 기능을 출시했다. 나는 항상 인터넷 비즈니스가 ‘애그리게이터(Aggregator)’라고 생각한다. 네이버가 그랬고, 다나와도 그렇고 내가 만들었던 쿠폰모아도 그랬다. 나는 그래서 당근마켓은 ‘지역 정보’를 모으는 애그리게이터로 키워 가기 위해 그것을 중심으로 여러 기능을 붙이고 있는 것이다.
- 보여주신 것
- 동 단위로 거래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표시되는 대시보드 (잘 안되고 있는 곳은 붉은색)
- 거래할 확률이 높은 것으로 표시되는 지역
- 2주 이내 거래 완료 그래프
- 보여주신 것
- 조: 2주 이내 거래 완료 그래프가 있는 것을 보니, 2주 이내 거래 성사를 주요 지표로 보고 있는 것 같다?
- 김: 그렇다. 초창기부터 이런 지표를 보는데 신경을 많이 썼다.
- 조: 내가 보니 데이터 통계 도구와 서비스 관리 도구가 하나의 페이지에 통합되어 있는 것이 인상깊다. 우리도 그런데 보통 두 페이지가 분리되는데… 그나저나 이 페이지는 키바나로 만든 것인가?
- 김: 별도 도구 없이 자체 개발했다. 두개의 페이지로 나눠 쓰다 보니 안 보게 되는 것 같더라. 그래서 CS, 데이터, 기타 서비스 관리를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의 페이지로 몰았다. 하드코어한 데이터 통계는 다른 도구를 쓰긴 하지만 일단 하나로 본다. 그게 기업 문화를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 조: 최근에 업무 환경 관련 개선에서 시도해서 좋은 결과를 본 것이 있는가?
- 김: 아카이브가 필요한 내용을 에버노트에 쓰다가 노션으로 바꿨다. 아주 잘 한 것 같다. 노션으로 바꾸자는 이야기를 내가 했다. 회사 소개 사이트가 있었는데, 업데이트도 안되고 해서 그냥 노션에 써서 올리면 어떨까 싶어서 바꾸자고 했는데, 회사의 젊은 구성원들(90년대 생)이 더 창의적으로 쓰더라. 기대했던 것보다 효과를 더 본 것 같다.
- 당근마켓 노션 페이지
- 외부에 공개된 페이지: https://www.notion.so/3d0197c137ec43d18ff739b5b254a3c8
- 내부 페이지 서브 메뉴 (허락 얻고 찍음)
- 당근마켓 노션 페이지

- 조: 노션 페이지를 보니 인원수가 30~40명인 것 같다. 우리도 꽤 적은 수로 큰 서비스 잘 돌리고 있다는 이야기 듣는데, 당근마켓은 정말 린(Lean)한 조직인 것 같다.
- 김: 사실 2019년 초까지만 해도 인원이 채 20명 밖에 되지 않았다. 우리 채용 원칙 중 ‘우리(나)보다 뛰어난 사람을 선발한다’는 것이 있다. 모든 회사가 그런 사람을 기대하겠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해주는 것은 또 다르다. 신뢰는 한 쪽이 먼저 시작해야 하는 것인데, 새로 들어오는 사람이 먼저 그 신뢰를 느끼도록 해주는 장치다.
- 조: 조직 문화로 보았을 때 또 신경 써서 만드는 것이 있나?
- 김: 사실 성장에 노력하는 스타트업이라면 다 비슷할 것 같은데, 업무 환경을 잘 갖추려고 노력한다. 월별로 노는 날 만들고… 사실 우리만 특별히 뭔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목요일은 전원 재택 근무로 한다. 그래서 그때만 스크럼 방식으로 나 뭐했다고 슬랙 채널에 올린다. 또 우리는 업계 평균 이상으로 보상을 해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아참 로켓펀치는 100% 원격이라고 들었는데, 왜 그렇게 하나?
- 조: 여러 이유가 있지만, 우리 고객들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앞으로 바뀐 업무 환경에서 사람들이 일하게 될 것 같고, 그걸 더 잘 이해하고 싶었다.
- 김: 그런가? 그런데 나는 사무실이 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오토매틱 같은 회사는 이미 제품이 완성된 단계이므로, 업무 단위로 쪼개서 일만 하면 되는데, 우리 같은 단계의 회사는 제품 변화가 잦다. 이런 회사들에서 의사 결정이 빨라지려면 어울려서 이런 저런 이야기가 오가는 공간이 있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또 ‘피어 프레셔(Peer Pressure)’ 같은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부정적 의미가 아니라, 내 동료가 열심히 일하고 잘하고 있으면 ‘나도 같이 잘해야겠다’는 그런 긍정적 압박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우리는 일주일에 하루만 재택근무를 한다. 구성원이 어떻게 되시나?
- 조: 14명인데 개발 직군으로 분류되는 사람이 9명 정도다.
- 김: 우리도 비슷하다. 40명 중에서 약 30명 정도가 개발 직군이다. 그중에서 4명은 머신러닝 엔지니어고 앞서 이야기 했던 개인화 프로젝트 등을 담당한다. A/B 테스트는 파이어 베이스로 돌리는데 편하게 잘 되더라. 머신러닝 팀에서 이런저런 실험을 자율적으로 많이 한다. 지표 변화가 있으면 왜 있을지 등을 계속 측정하는 등. 앞서 보여준 관리자 페이지도 그런 맥락에서 만든 것이다. 어떤 데이터에 대해서 기획자가 개발자에게 요청해서 확인하면 그건 둘 밖에 모르는 정보다. 하지만 관리자 페이지에 그 정보가 있으면 모두가 볼 수 있다. 그것이 중요하다.
함께보기
- 김재현 대표님의 좋은 인터뷰 : [창업의달인]⑭ ‘원조 컴퓨터 덕후’ 김재현, 60억원에 회사 매각…이웃간 직거래 장터 창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