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경영자 vs 마케터 (War in the Boardroom) – 알 리스, 로라 리스

최근 마케팅에 대해 생각할 일이 많아져서, 얼마전에 읽었던 스타벅스 하워드 슐츠 회장의 ‘온워드’ 다음으로 집어 들게 된 책이다. 온워드와 비슷하게 2010년쯤 샀던 책이니, 내 책장에서 9년 정도 나를 기다린 것이다.

내가 책을 평가하는 기준에서 이 책은 아주 좋은 책이다. 마케팅 분야의 고전 ‘마케팅 불변의 법칙’, ‘브랜딩 불변의 법칙’을 쓴 저자는 이 책에서도 최대한 균형을 유지하며, 꼭 필요한 이야기들을 전달한다. 저자는 이 책의 쓴 목적을 ‘주로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경영자와 직관적인 판단을 하는 마케터의 인식을 줄이기 위해서’라 적고 있다.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통계가 책 서두에 있다. 미국 기업들의 이사회 구성원들 중에서 경영형 역할인 CEO, CFO, CIO의 평균 재직 기간은 각각 44개월, 39개월, 36개월인데, 마케터의 역할을 하는 CMO는 고작 26개월이라고 한다. 저자는 이사회에서 마케팅 전략에 대해서 CEO, CFO, CIO형 인물과 CMO형 인물의 의견 충돌이 빈번하고, 그 결과 상대적으로 소수인 CMO형 인물들이 해고를 당하거나 스스로 떠나는 경향을 보여주는 통계라는 설명이다. 왜 이 책의 원제를 ‘War in the Boardroom’라고 지었는지 알 것 같은 대목이다.

바쁜 분들은 이 책의 목차만이라도 꼭 읽어보시길 권한다. 당신이 경영자 역할이건, 마케터 역할이건 나와 다른 방식의 사고를 하는 동료와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좋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동시에 이 책은 아주 재미있는 책이다. 첫 출간이 2009년 2월이었으니 이제 10년이 흐른 셈인데, 그 세월 동안 저자가 마케팅과 브랜딩에 대한 자신의 철학에 기초하여 판단한 사례들 중에서 틀린 것들이 생겼다. 대표적으로 이런 것들이다.

  1. 당시 아마존이 책에서 다른 모든 인터넷 쇼핑 카테고리로 확장하는 전략이 아마존이 가지고 있는 ‘온라인 서점’의 공고한 브랜드가 흐려져서, 결국 성공적이지 못한 시도가 될 것이라 이야기 한다. 10년이 흐른 지금 아마존은 인터넷 쇼핑 그 자체가 되었다. 통칭 ‘Everything Store’
  2. 구글이 검색 외 다른 카테고리로 ‘구글 ㅇㅇ’ 같은 서비스를 내 놓는 것을 부정적으로 이야기 한다. 구글이 검색에서 가진 선도적 지위가 약해질 것이라고 이야기 하며, cuil 이라는 서비스가 구글의 검색을 대체할 수도 있지 않을까 예상한다. cuil이란 서비스는 찾아보니 2010년경에 문을 닫았고, 구글은 정보 검색 그 자체가 되어가고 있다. 통칭 ‘Search the World’
  3. 멀티미디어의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보면서, 텔레비전이 앞으로도 건재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2008년까지 미국인들의 평균 텔레비전 시청 시간은 127시간으로 2007년보다 여섯 시간 늘어났는데, 인터넷 평균 이용 시간은 24시간에서 26시간으로 두시간만 늘었다는 통계를 덧붙인다. 10년이 지난 지금, 텔레비전은 여전히 살아있지만, 스마트폰에 사람들의 여가 시간을 빼앗긴지 이미 오래되었으며, 아무도 텔레비전 시청 시간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4. 마이크로소프트에게 더 단순한 새 운영 체제 출시를 제시한다. 보통 사람들이 컴퓨터로 하는 일은 웹브라우징, 이메일 확인, 음악 감상 밖에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알려진 것처럼, 윈도우의 파편화는 MS의 발목을 잡았고, 그들은 지금 더 단순화된 OS 체계로 훨씬 잘 하고 있다. 아 물론, 저자의 제안은 스마트폰 OS들을 통해 해결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틀린 예측들이 몇개 있다고 해서 이 책의 가치가 훼손되지는 않는다. 나는 오히려 와인이 숙성된 것처럼 지금 그 가치가 더 올라갔다고 생각한다. ‘최고의 마케팅, 브랜딩 전문가가 대부분 옳은 말을 했는데, 왜 일부는 틀렸을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므로, 10년이 지나 더 좋은 책이 된 것이다.

저자가 던지는 긴 메시지를 짧게 요약하자면 이정도가 될 것이다.

  1. 브랜드는 소비자의 마음 속에 있는 어떤 상품 카테고리를 장악하는데 집중해야 한다.
  2. 카테고리를 장악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며, 그 시간 동안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3. 카테고리를 장악한 브랜드를 다른 카테고리에 적용하려고 하면, 소비자가 가진 인식과의 충돌 때문에 보통 좋지 않은 결과가 생긴다.

참 맞는 말인 이런 원칙들이 왜 위 아마존, 구글 등의 사례에서는 틀린 것으로 나왔을까?

아마 가장 큰 이유는 ‘카테고리를 무엇으로 정의했느냐’일 것 같다. 제프 베조스는 처음부터 인터넷 쇼핑 분야를 전부 장악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는 시작점이 책이었을 뿐이다. 저자가 아마존의 카테고리를 ‘책’으로 한정하고 있었다면, 이는 맞는 말이지만, 순차적으로 모든 카테고리를 점유하는 전략이었다면, 아마존의 판매 상품 종류 확대는 자연스러운 것, 그리고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이다.

두번째 이유는 인터넷 기반 산업의 게임의 법칙이, 전통 산업의 그것과 다른 데서 기인한다고 본다. 인터넷 기반 서비스는 변동 비용이 전통적인 제품 생산 비즈니스와 비교하면 거의 0에 수렴한다. IT 기업들이 각자의 비즈니스 최전성기에 50%가 넘는 영업 이익율을 찍을 수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한 제품 라인업을 확장할 때 들어가는 비용이 현저히 적다. 전통 산업에서 새로운 카테고리에 제품을 출시하거나, 상점을 열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초기 투자 비용이 들어가기 마련이지만, IT 분야에서는 상대적으로 매우 적은 비용으로 새로운 카테고리에 진출할 수 있다. 극단적인 예로 구글이 그들의 새로운 서비스를 전세계 동시에 출시하는데 추가되는 비용은 개발 비용이 비해서 거의 없다고도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인터넷 IT 서비스를 쓰는 자연스러운 패턴도 그 이유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인터넷 서비스의 본질적 UX는 ‘링크(Link)’다. 사람들은 링크를 따라 여러 페이지를 오가며 콘텐츠를 소비하고, 하려던 일을 한다. 전통 산업에서 하나의 브랜드를 다를 카테고리로 확장했을 때 얻을수 있는 건 친숙한 이미지 밖에 없다. 하지만 어떤 인터넷 포털에서 뉴스를 보던 사용자에게 그 뉴스에 나온 지역을 지도에서 찾는 방법을 링크로 제공하고 그것을 ‘ㅇㅇ 포털 지도’라고 했을 때, 사용자가 얻을 수 있는 것은 ‘ㅇㅇ 포털에서 제공하는 지도’라는 브랜드 이미지 뿐만이 아니다. 사용자는 굳이 다른 방법으로 그 지역을 찾아볼 필요가 없기 때문에, 연결 그 자체가 훌륭한 가치를 제공한 것이다. 이것을 어떤 신문 브랜드가 그 브랜드를 확장한 지도책을 판매하는 것과 비교해보자. 전통 산업에 비해 인터넷 기반 산업에서는 새로운 기능을 제공하며 브랜드를 확장했을 때 사용자가 느끼는 가치는 훨씬 크고 또 자연스럽다.

저자는 전통 산업의 마케팅을 중심으로 자신의 지혜를 쌓아온 사람이다. 새로운 카테고리인 IT 산업에서 그의 통찰력이 다소 어긋난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이야기가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카테고리에서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하는, 그의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를 더 일깨워주는 사례가 아닐까?


독서와 운동을 함께 하는 모임, ‘무이문’에서 소개한 책입니다. 함께하고 싶은 분은 여기에 정보를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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